[여행하는 장바구니]양평 용문산 산나물축제
그 나물에 그 밥이 필요할 때!
봄이 끝을 바라보고 있다.
초봄 꽁꽁 언 땅에서 수확한 봄동부터 달래, 냉이, 씀바귀, 원추리 등이 화려한 봄날의 문을 열었다면 봄을 끝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은 산나물들의 세상이다. 우리나라 지형의 특징상 서해보다는 동해를 따라 깊은 산들이 많으니 4월과 5월에는 빠지지 않고 여러 지역에서 산나물 축제가 열린다.
내가 살고 있는 경기도 양평에는 용문산(龍門山)이 있다. 용문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빼어나며 골이 깊어서 예로부터 경기의 금강산으로 불렸다. 용문산에 있는 사찰, 용문사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천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있어 더 유명하다.
해마다 열리는 용문산 산나물 축제는 수도권 전철이 개통되면서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또 서울에서 양평으로 이어지는 자전거 코스가 생겨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용문산 산나물축제를 찾는다.
해마다 4월에는 용문사 입구의 용문산 관광지 일원에서, 5월에는 용문역 일원에서 축제가 열린다. 용문산에서는 깊은 산세로 다양한 산나물들이 채취되고 있다. 공기가 맑고 청정한 지역으로 옛날에는 용문산의 산나물은 임금님에서 진상되었다고 한다.
많은 수입 농산물들이 우리집 식탁을 메우고 있지만 봄이 가기 전에 야생 산나물을 한 접시 밥상에 올리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올해에는 용문역 일원에서 열린 산나물 축제에 나가 산나물 탐구를 시작해 보았다.
대충 보면 모른다.
자세히 보면 더 모른다.
그래서 너희를 통칭해서
산나물이라고 하는구나!
큼직큼직한 글씨로 적어 놓지 않는다면 과연 몇 가지 나물이나 알아 볼 수 있을까?
한정식집에 한상 차려진 나물들은 맛본 적이 있었지만 밥상 위에 나물이 되기 전에 정체를 정확하게 알고 있지는 못했다.
산나물축제의 주인공들은 주로 곤드레, 잔대싹, 참취, 곰취, 다래순, 뽕잎순, 두릅, 엄나무순, 참나물 등이 주를 이루었다. 물론 용문산 산나물 축제이지만 옆 동네 강원도에서 원정을 온 나물들도 많다.
산나물들은 날것으로 먹거나 데쳐서 바로 무쳐 먹기도 하지만 주로 데쳐서 5월의 강한 햇볕에 말려 묵은 나물을 만들어 두었다가 내년에 봄나물이 나오기 전까지 먹게 되는 일이 많다. 말려지면 그 형태를 알아 볼 수 없지만 나물로 재탄생하면 각각 개성이 넘치는 맛을 낸다.
산나물 탐구!
곤드레 나물은 너무 맛있어서 먹고 나면 ‘곤드레 만드레~’ 된다는 믿거나 말거나한 이야기가 있다. 곤드레는 나물밥으로 유명한데 국이나 죽으로 끓이기도 하다. 산나물이 가지는 특성은 맵거나 톡 쏘는 맛이 있는데 곤드레 나물은 많이 먹어도 질리거나 탈나는 일이 없어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다.
취나물 집안의 패밀리들이 여럿 있으며 산나물계를 주름잡고 있다. 곰이 좋아한다는 곰취는 여린 잎은 쌈을 싸 먹거나 장아찌를 담고 참취나물은 산나물에 없어서는 안 될 나물이다. 수리취나물은 쑥처럼 쌀가루와 빻아서 주로 떡을 만들어 수리취떡이라 부른다. 그 외에는 미역취, 단풍취 등이 있다.
두릅과 엄나무순은 모양이 비슷하지만 그 맛과 향이 달라 같이 또 따로 각자의 길을 간다. 엄나무순은 개두릅이라고도 부르면 두릅 대우를 해 주는 듯해도 막상 두릅이 등장하면 천대 받기 일쑤다. 그러나 진짜 맛을 아는 사람은 엄나무순을 더 높이 평가한다. 엄나무순을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하고 들기름과 국간장에 무쳐 먹기도 하지만 물김치를 담가두면 그 맛도 좋다. 두릅은 다 잘 아는 것처럼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하지만 튀김옷을 입혀 노릇노릇하게 튀겨 먹어도 별미다.
두릅과 엄나무순은 말려서 보관하지 않는다. 꼭 보관하고 싶다면 데쳐서 지퍼팩에 약간의 물을 넣고 물에 두릅, 엄나무순이 잠기도록 넣어 얼려 두면 질겨지지 않게 맛볼 수 있다.
다래순과 뽕잎은 키위처럼 생긴 다래나무의 순과 오디열매를 맺는 뽕나무의 순이다. 산나물의 특징들은 시간이 지나 억세어지면 맛보기 힘들다. 다래순과 뽕잎도 여린 순을 따서 데쳐서 무쳐서 주로 먹는다.
잔대의 뿌리는 만간에서 거담제로 주로 쓰이고 5월에 올라오는 잔대의 싹은 뜯어서 나물로 무쳐 먹는다.
자연산 참나물은 마트에서 본 일반 참나물과 달리 줄기가 붉은색을 띠며 보기에도 약효 성분이 가득 담겨 있을 듯 내공이 있어 보인다.
누리대는 처음 보는 산나물이다. 이곳저곳에 다 있는 산나물과 달리 어느 한집에만 있는데알아보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연세 지긋하신 할아버지가 누리대를 보시고 반가워 하시길래 옆에 가서 여쭈어 보았다. “어떻게 먹나요?”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가 나오신다. 5월에 모내기를 할 때 누리대나물을 놓지 않는 집의 밥상은 부족한 밥상이라고 하셨다. 누리대는 송송 썰어 그대로 먹거나 양념으로 무쳐 먹는데 소화제 역할을 한단다. 그래서 늘 5월에는 늘 누리대를 밥상에 올렸다고 한다.
산나물 외에도 다양한 버섯이나 뿌리채소인 더덕, 도라지들도 산나물축제에 빠지지 않는 게스트들이다. 근사한 포장지에 반듯반듯하게 담겨져 있지는 않지만 넉넉한 저울 인심이 있어 재미가 있는 곳이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는 말려두었던 봄날의 산나물로 보릿고개를 넘겼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먹을 것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옛 맛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 산나물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산나물 축제에서 양손 가득하게 산나물을 구입했을 것이다.
전국의 산나물 축제들은 끝이 나고 있지만 산나물 축제의 산나물들은 데쳐서 봄볕과 봄바람에 잘 말려서 일 년 내내 맛있는 산나물을 맛볼 수 있기를~
글. 요리연구가 이미경
글과 사진· 이미경(요리연구가)
시골 농가를 얻어 텃밭을 가꾸며 건강한 시골 음식을 연구하는 요리연구가로 쿠킹 스튜디오 '네츄르먼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친근한 식재료에 다섯 가지 과정을 넘기지 않고 갖은 양념을 배제한 심플하고 건강한 음식'을 만듭니다.
지금까지 만든 책으로는 <도시맘의 시골밥상> <오븐 요리> <집에 가서 밥 먹자> <아이 요리> <밥 먹는 카페> 등이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pout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