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장바구니]독일의 맥주
2탄 : 질보다 양으로 승부를 건 맥주 일자무식쟁이의 맥주 여행
독일? 독일은 왜가요?
독일 여행을 앞두고 너무도 많은 사람들한테 받은 질문입니다. 프랑스, 이탈리아를 간다면 당연히 미식여행을 떠난다고들 생각하지만 독일여행을 간다고 하니 특별한 이유를 설명해야 여행을 허락받을 듯한 기분이랄까요.
분단 국가에 사는 한 사람으로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통일 광장의 감동을 체험하러 간다고 해야 하나? 때마침 여행 중이었던 10월 3일은 독일 통일의 날이었어요. 그러나 아무도 제 여행 의도를 믿지 않을 테니 마땅한 이유를 찾아야 했어요.
그럼??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핫한 수제 맥주!
그래!! 맥주 맛보러 독일 가요!
진짜 여행의 의도를 아는 사람들은 비웃을 이야기지만 맥주 여행은 독일 여행의 이유로는 꽤 괜찮아서 의도하지 않게 독일 여행은 맥주 여행으로 정해졌답니다. 떠나기 전에 맥주책도 몇 권 사고 독일 맥주 관련 글도 찾아 읽어 보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그때뿐 책을 덮고 인터넷을 끄면 맥주는 병맥주와 캔맥주, 생맥주 딱! 세 가지가 있다~로 정리되니….
여행 다녀와서 기대가 클 텐데~ 독일에 맥주 여행을 간다고 이야기 한 지인들에게 사실대로 이야기를 해야 하나? 일단 독일 가서 최선을 다해 맥주를 마시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깨달음을 얻게 될까?
후자를 택해 일단 독일로 떠났습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모르니 안보이더라!’
‘독일 맥주인지, 벨기에, 영국, 오스트리아 맥주인지 섞어 마시니 라벨도 안보이고 아무것도 모르겠더라!’
‘독일 맥주 여행~ 여러 맥주 마시다 보니 에라 모르겠다!’
독일 맥주 소개에 앞서 솔직 후기 먼저 이야기 하고 맥주는 맛보다는 분위기로 마시는 것이라고 뻔뻔히 이야기하며 용감히 ‘독일에서’ 마신 맥주를 소개합니다.
독일에는 1,350곳이나 되는 브루어리(맥주 양조장)가 있다고 하네요. 맥주 브랜드만 7,500여 개가 넘으니 맥주가 독일을 대표하는 것은 당연해요.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수제맥주붐이 일면서 친근한 지역명의 수제맥주들이 많아졌지요. 독일이 다양한 맥주를 만들어 낸 것은 맥주 생산의 오랜 역사 때문이에요. 중세부터 만들기 시작한 맥주는 운반시설이나 보냉시설이 없기 때문에 규모가 큰 전국적인 브랜드보다는 지역마다 맥주를 생산했다고 해요. 우리나라의 지역 막걸리도 독일의 맥주와 비슷한 이유로 오래전부터 지역에서 만들어졌겠지요.
독일에는 언제! 어디서나! 맥주 축제가 열린다?
하이델베르크의 가을 맥주 축제
독일이라고 1년 365일 맥주 축제만 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독일을 대표하는 축제로 뮌헨의 ‘옥토버페스트’는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수 천 명이 큰 맥주잔을 가득 채우고 맥주를 마시는 장면은 어디서든 한 번쯤은 보았을 거예요. 9월 말부터 10월에 걸쳐 2주일 동안 열려 맥주 애호가들이라면 한번쯤 가보고 싶은 곳으로 꼽히지요. 물론 뮌헨으로 여행 코스를 잡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저의 독일 맥주 여행은 1차부터 실패! 그러나 운 좋게 하이델베르크에 간 날이 마침 가을축제가 있는 날이었어요. 수확을 감사하며 서로 맥주를 주고받는 것이 독일 축제의 기본이랍니다.
하이델베르크의 가을 축제도 여러 브랜드의 수제 맥주를 맛볼 수 있는데, 소시지와 감자 요리가 곁들여지지요. 수제맥주는 ‘소규모’, ‘독립적’, ‘전통적’이라는 의미로 미국에서 시작되었지만 독일의 수제맥주는 소규모이자 독립적이지만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혁신적인 맥주를 생산하려는 양조장의 제품이 많다고 합니다. ‘개성이 강하다’,‘스타일리시하다’가 왠지 독일 수제맥주와 어울릴 듯해요.
1)축제답게 신나게 맥주를 팔고 신나게 맥주를 사서 마십니다
푸드트럭이 아니라 비어트럭이 맥주의 개성을 말해주듯 다양한 형태로 중심 자리를 잡고 그 주변으로 푸드트럭이나 푸드 부스가 약간씩 어우러져요. 야외 축제에서의 기본은 일회용품 사용인데 맥주의 맛과 분위기를 일회용품이 살려 주지 못하는 법! 맥주집마다 멋지고 다양한 잔에 맥주 거품을 제대로 살린 수제맥주를 담아줍니다.
2)맥주값보다 맥주잔 디파짓(보증금)이 더 비쌉니다
처음에 몰랐어요~ 설명해 주지 않으니~
비워진 맥주잔을 가져가면 디파짓을 돌려받고 다시 그 돈으로 옆집으로 향합니다. 다른 맥주를 맛 보러~ 맛과 분위기에 취해 이어지는 맥주 릴레이는 끝이 없을 듯하니 뮌헨의 옥토버페스토를 가지 못한 것에 대해 오히려 감사하게 되었어요. 우리나라에 치맥, 피맥이 있다면 독일은 당연히 소맥(소시지와 맥주)이거나 군더더기 없는 그냥 맥주가 있습니다. 독일인들에게 맥주는 술이 아니라 그냥 일상이라고 보면 맞을지도!?
기차에서는 달걀과 사이다 대신
프리첼과 맥주?
독일은 우리나라 면적의 3.5배 정도이고 인구는 대략 8천 만 명, 그리고 수도는 베를린, 평균수명은 남성 77.9세, 여성은 82.9세, 시차는 8시간(3월에서 10월까지는 서머타임제 적용으로 7시간).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 인구밀도가 편.
여행서에서 읽은 내용 중 기억에 남는 내용인데 유럽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 기차로 이동이 편리했어요. 사람들의 이동이 많은 중앙역이나 큰 역에서는 다양한 상점들이 있어 기차 여행 동안 맛볼 음식을 챙기는데 좋었고요, 물론 맥주도 포함해서!
독일 대도시의 아침도 스타벅스가 대세인 듯했어요. 스타벅스에 익숙해서인지 스타벅스 커피를 든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더군요. 그러나 아침부터 맥주를 들고 어디론지 열심히 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밤새 마셔 취한 사람, 독일의 겁 없어 보이는 젊은이들, 그리고 저 같은 여행객?
하루의 시작을 맥주로 하는 일도 특별해 보이지는 않았어요. 물보다 맥주가 더 싸다고 스스로를 합리화 하며 맥주를 한 병 삽니다. 그리고 기차역에서 샌드위치, 피자, 프리첼을 구입하고요. 프리첼의 짠맛에 맥주 한 모금하면 짠맛이 사라지고 맥주 한 모금 하니 다시 짠맛이 생각나고 하여간 짠맛과 맥주의 궁합은 환상이었고 그중에서도 독일을 대표한다면 프리첼과의 관계는 우리의 달걀과 사이다와 같았어요.
여긴 어디~ 이 세상은 어떤 세상~
맥주의 세계로 빠져들다
계획한 일정을 마치는 저녁이면 급하게 사라졌다가 숙소로 들어갈 때에는 양손이 버거울 정도로 무겁게 무엇인가 들고 있었지요. 숙소 근처에 작은 마트에 들려서 맥주 구경에 나섭니다. 맥주 하나씩 모두 들여다보고 꼼꼼히 확인합니다. 그리고 장바구니에 담기. 첫날은 그랬어요.
그러나 둘째 날, 셋째 날이 되면서 독일의 다양한 맥주를 꼼꼼히 다 살피다가는 마트의 직원과 함께 퇴근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점점 병의 모양과 그림만으로 장바구니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마트에서도 매장 한쪽은 모두 맥주로 진열되어 있어 독일은 맥주특별구 같았어요. 독일의 맥주는 매우 다양하다고 예습을 하고는 왔으나 여행객의 마음을 이렇게 불편하게 만들 줄 몰랐어요. 왔다갔다 마음은 분주하고 이 맥주를 집으니 저 맥주가 있고 저 맥주를 집어 드니 또 다른 맥주가 있는 형국이었지요.
맥주는 생맥주, 병맥주, 캔맨주로만 나누는 줄 알았던 일자무식쟁이가 맥주 박물관도 아닌 동네 마트에서 이렇게 많은 맥주를 보니 당황 할 수밖에 없었어요.
라거(lager), 에일(ale).
맥주는 발효 방식에 따라 ‘상면 발효’와 ‘하면 발효’타입이 있고 좀더 세부적으로는 색의 농도로 분류하기도 해요. 에일이 라거보다 오랜 전통을 가진 맥주로 발효시킬 때 위로 떠오르는 효모, ‘상면 발효 효모’로 만들어져 ‘상면 발효 맥주’라고 불러요.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에일 맥주의 인기가 많은데 과일과 같은 향긋한 맛과 진하고 깊은 맛을 내지요. 에일 맥주는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주로 만들어져요.
라거는 우리나라에서 주로 마셔왔던 맥주로 19세기 중반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발효통에 아래에 가라앉는 ‘하면 발효 효모’로 만들어져 ‘하면 발효 맥주’라고 해요. 라거는 독일어로‘저장’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어요. 에일보다 낮은 온도에서 장시간 저장시켜 만들어지기 때문에 에일과 달리 과일향이나 깊은 맛이 없는 대신 깔끔하고 시원한 청량감이 살아있어요.
전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맥주 중에는 라거가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특히 독일에서는 전국적으로 필스너(pilsner)가 대세입니다. 그러나 필스너가 생산되는 곳은 독일이 아닌 체코의 ‘플젠’이라는 도시라고 합니다. 독일 맥주 중에 자주 등장하는 둥켈(dunkel)은 ‘dark'를 뜻하는 흑맥주예요.
‘맥주 순수령?’
독일에서는 16세기 초반에 공포된 맥주 순수령에 따라 맥주를 만들 때 맥주의 원재료인 보리몰트, 홉, 물, 효모 이외의 재료를 사용하지 않아요. 19세기에 밀을 원료로 맥주를 만드는 것이 합법화 되었고 해외시장에서의 경쟁을 위해 법이 완화되었다지요. 오히려 맥주 순수령이 독일 맥주를 더 특별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독일에는 독일 맥주 외에도 이웃나라 네덜란드, 벨기에, 체코 맥주도 많고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독일 맥주를 다양하게 맛볼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러나 독일 마트의 맥주 가격표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이상 비싸게 판매되는 우리나라 마트에서 독일 맥주를 쉽게 장바구니에 담지는 못할 것 같아요.
맥주에 하나하나에 대한 평가는 맥주 일자무식에서 벗어나 맥주에 대한 지식이 준비되었을 때 다시 맥주의 본고장인 ‘뮌헨’을 다녀와서 써도 늦지 않을 듯하니 다시 독일 여행을 갈 가장 확실한 이유가 준비되었습니다.
글과 사진· 이미경(요리연구가)
시골 농가를 얻어 텃밭을 가꾸며 건강한 시골 음식을 연구하는 요리연구가로 쿠킹 스튜디오 '네츄르먼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친근한 식재료에 다섯 가지 과정을 넘기지 않고 갖은 양념을 배제한 심플하고 건강한 음식'을 만듭니다.
지금까지 만든 책으로는 <도시맘의 시골밥상> <오븐 요리> <집에 가서 밥 먹자> <아이 요리> <밥 먹는 카페> 등이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poutian